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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분에 1개씩 뚝딱" 네이버 블로그 점령한 'AI 따발총'…결국 칼 빼든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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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00건 폭격에 생태계 교란… 타깃은 '광고 수익' 진성 블로거들 "3시간 공들인 글 묻혀" 분통 네이버 "매크로·도배 비정상 행위 모니터링 대폭 강화할 것" (IT/플랫폼=AI리포터 알파남) "어제도,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네이버 블로그 게시물 하단에 날씨와 문맥에 전혀 맞지 않는 영혼 없는 댓글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하루에만 무려 100개가 넘는 글이 한 블로그에 융단폭격처럼 쏟아진다. 이른바 인공지능(AI) 자동화 포스팅, 이른바 'AI 따발총'이 네이버 블로그 생태계를 빠르게 잠식하면서 정보의 질 하락과 이용자 피로도가 한계치에 달하고 있다. ■ 2~3분에 하나씩 '복붙'… 시간여행까지 하는 AI 포스팅 최근 블로그 커뮤니티에서는 비정상적인 게시물 생산 속도를 보이는 '공장형 블로그'들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실제로 한 건강 정보 블로그는 단 하루 만에 102개의 게시물을 쏟아냈다. 사람이 직접 자료를 찾고 이미지를 편집해 글을 쓸 경우 최소 1~2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지만, 이 블로거는 2~3분 간격으로 글을 발행했다. 심지어 검수조차 거치지 않아 과거의 질병 유행을 마치 현재의 일인 양 포장하는 등 내용의 오류도 심각한 수준이다. 경제나 연예 이슈를 다루는 다른 블로그들 역시 타인의 게시물과 사진을 무단으로 긁어모아 AI로 짜깁기한 뒤 하루 30~60건씩 글을 올리며 트래픽(방문자 수)을 빨아들이고 있다. ■ 목적은 단 하나, '애드포스트'… 유료 강의 팔이까지 기승 이들이 이토록 영혼 없는 포스팅 도배에 집착하는 이유는 네이버의 자체 광고 수익 창출 모델인 '애드포스트' 때문이다. 게시물 수가 많아지고 운 좋게 메인 화면(홈판) 알고리즘에 걸려 수만 명의 방문자가 유입되면, 하루에도 수십만 원의 광고 클릭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계산이다. 온라인상에는 이러한 ...

[4편] 동북아시아의 방어선, 고구려 성곽(山城)이 무너지지 않았던 이유

역사적으로 고구려는 수나라와 당나라 같은 거대 제국들의 파상공세를 여러 차례 막아냈습니다. 수십만 명의 대군이 밀려와도 고구려가 건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단순히 병사들이 용감해서만이 아닙니다. 바로 당대 최고의 공학 기술이 집약된 '고구려식 성곽 구조' 덕분이었습니다. 처음 고구려 산성을 직접 보거나 자료로 접했을 때 제가 가장 놀랐던 점은, 단순히 돌을 쌓은 것이 아니라 지형을 완벽하게 이용한 '전술적 건축물'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1. 굽어보는 눈, '치(雉)'의 기하학적 설계 고구려 성벽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일정한 간격으로 성벽이 툭 튀어나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치(꿩)'라고 부릅니다. 꿩이 제 몸을 숨기고 밖을 잘 살피는 특성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이 '치'는 고구려 성곽 방어의 핵심입니다. 적군이 성벽을 타고 오르려 할 때, 성벽 위에서만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튀어나온 '치'에서 적의 측면과 배후를 공격할 수 있습니다. 즉, 적을 삼면에서 입체적으로 타격하는 구조입니다. 제가 시뮬레이션을 상상해보니, 공격하는 입장에서는 사각지대가 없는 공포의 벽이었을 것입니다. 2. 무너지지 않는 기초, '그랭이 공법'과 '굽도리' 고구려 성벽은 1,500년이 지난 지금도 원형을 유지하는 곳이 많습니다. 그 비밀은 기초 공사에 있습니다. 고구려인들은 성을 쌓을 때 지면을 그냥 평평하게 다지는 게 아니라, 울퉁불퉁한 자연 암반 모양 그대로 돌을 깎아 맞추는 '그랭이 공법'을 사용했습니다. 또한, 성벽 아래쪽을 위쪽보다 약간 더 두껍고 계단식으로 쌓는 '굽도리' 방식을 적용해 무게 중심을 아래로 두었습니다. 이는 지진이나 거대한 공성 퇴각(성문을 부수는 기구)의 충격에도 성벽이 쉽게 무너지지 않게 지탱해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3. 공격과 방어의 반전, '옹성(甕城)' 성문은 성곽에서 가장 취약한 ...

[3편] 철의 제국 고구려: 개마무사의 갑옷과 무기 체계에 담긴 과학

고구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아마도 온몸을 철갑으로 두른 채 전장을 누비는 기병, 바로 **'개마무사(鎧馬武士)'**일 것입니다. 처음 고구려 벽화 속의 개마무사를 보았을 때, 저는 "저 무거운 갑옷을 입고 어떻게 말 위에서 싸웠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고구려의 제철 기술과 무기 체계를 분석해보니, 그것은 단순한 무력이 아니라 당대 동아시아 최고의 '하이테크'가 집약된 결과물이었습니다. 1. 찰갑(札甲), 움직임과 방어력을 동시에 잡다 고구려 갑옷의 핵심은 '찰갑' 방식입니다. 커다란 철판 하나로 몸을 감싸는 서양의 판금 갑옷과 달리, 고구려는 작은 철 조각 수백 개를 가죽 끈으로 엮어 만들었습니다. 제가 이 구조를 유심히 살펴보니, 철 조각들이 물고기 비늘처럼 겹쳐 있어 날카로운 화살이나 칼날을 튕겨내는 방어력이 탁월했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유연성'입니다. 수백 개의 조각이 관절의 움직임에 따라 유동적으로 움직였기에, 기병들은 말 위에서 활을 쏘거나 창을 휘두르는 복잡한 동작을 자유자재로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2. 말까지 보호하는 '개마(鎧馬)'의 위용 고구려가 무서웠던 이유는 병사뿐만 아니라 '말'에게도 갑옷을 입혔기 때문입니다. 말의 머리부터 엉덩이까지 철갑으로 보호했는데, 이는 적진의 화살비를 뚫고 정면으로 돌격할 수 있는 강력한 '탱커' 역할을 수행하게 했습니다. 당시 보병 중심이었던 주변국들에게 전신을 철로 감싼 거대한 괴물(개마무사)들이 시속 40~50km로 달려오는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현대의 전차(Tank) 부대와 같은 충격력을 1,500년 전에 이미 구현했던 셈입니다. 3. 고품질 철광석과 제철 기술의 결합 이런 대규모 철기 부대를 운영하려면 엄청난 양의 철과 고도의 제련 기술이 필요합니다. 고구려는 한반도 북부와 만주 일대의 풍부한 고품질 철광석 산지를 ...

[2편] 험난한 산악 지형을 기회로 만든 고구려의 첫 수도, 졸본성 입지 분석

주몽 집단이 부여의 추격을 뿌리치고 도착한 곳은 지금의 압록강 지류인 혼강 유역, 바로 '졸본'이었습니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그들이 마주한 풍경은 끝없이 펼쳐진 평야가 아니라,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험준한 산줄기였습니다. 많은 역사 입문자가 "왜 농사짓기 좋은 평지를 두고 굳이 척박한 산악 지형을 선택했을까?"라고 묻곤 합니다. 하지만 제가 실제 지형 데이터와 당시 정세를 살펴보니, 이는 고구려가 대제국으로 성장하기 위한 **'생존형 맞춤 입지 선정'**의 정수였습니다. 1. 천혜의 요새, 오녀산성이 주는 압도적 방어력 졸본성의 중심인 '오녀산성'을 보면 고구려인들의 영리함에 감탄하게 됩니다. 이 성은 해발 800m가 넘는 높이에 위치하며, 동·남·서 세 방향이 수직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제가 군사 전략적 관점에서 분석해 보니, 이는 적은 병력으로도 수십 배의 적을 막아낼 수 있는 구조입니다. 건국 초기, 인구도 적고 군사력도 미비했던 주몽 집단에게 가장 절실했던 것은 '풍요'보다 '안전'이었습니다. 일단 죽지 않고 살아남아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2. 농경의 불리함을 메운 '네트워크'의 힘 졸본은 농사지을 땅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좌절하지 않고 지형의 단점을 역이용했습니다. 산악 지형은 농사에는 불리하지만, 주변 소국들을 감시하고 교역로를 장악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고구려인들은 스스로 생산하기보다 주변 세력을 복속시키거나 물자를 유통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농토가 없어 고통받는다"는 기록이 무색하게, 그들은 오히려 강인한 체력과 기마술을 연마하며 주변을 압도하는 군사 국가로 체질을 개선해 나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고구려 특유의 **'상무(尙武) 정신'**이 탄생하게 된 배경입니다. 3. 물과 산의 조화: 배후 도시의 설계 졸본성은 단순히 산 꼭대기에 고립된 성이 아니었...

[제1편: 고구려 건국 신화 속 숨겨진 생존의 기술: 주몽은 왜 북쪽을 떠났나?]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고구려의 시작은 주몽이 알에서 깨어나 활을 잘 쏘았다는 신비로운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하지만 애드센스가 좋아하는 '정보성 콘텐츠'의 관점에서 이를 다시 들여다보면, 이는 단순한 신화가 아니라 한 집단이 새로운 터전을 잡기 위해 거쳐야 했던 처절한 **'생존 전략'**의 기록입니다. 처음 고구려 역사를 공부할 때 "왜 주몽은 그 비옥한 부여를 떠나 험난한 남쪽으로 내려왔을까?"라는 의문이 생기곤 합니다. 오늘은 건국 신화 이면에 숨겨진 실질적인 배경과 주몽 집단이 가졌던 차별화된 경쟁력을 분석해 보겠습니다. 1. 기득권과의 갈등, 그리고 결단력 주몽은 부여의 금와왕 아래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지만, 이는 곧 기존 권력층인 대소 왕자와의 갈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주몽의 '위기 관리 능력'입니다. 그는 부여 내부에서 숙청당할 위기에 처하자 주저하지 않고 자신을 따르는 세력을 규합해 남하를 결정합니다. 현대 사회로 치면 안정적인 대기업(부여)의 울타리를 벗어나 아무것도 없는 거친 황야에서 스타트업(고구려)을 시작한 셈입니다. 이 과정에서 주몽은 단순히 도망친 것이 아니라, 부여의 선진적인 철기 문화와 기마 기술이라는 핵심 자산을 가지고 이동했습니다. 2. 엄리대수(淹利大水) 사건이 주는 교훈 추격대를 뿌리치고 강가에 다다랐을 때,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놓아주었다는 대목은 역사적으로 해석하면 당시 주몽 집단이 배를 다루는 기술이나 수로 이용에 능숙한 집단의 도움을 받았음을 시사합니다. 제가 여러 자료를 찾아보며 느낀 점은, 성공적인 건국에는 리더의 카리스마뿐만 아니라 외부 세력과의 '협력과 연대'가 필수적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주몽은 낯선 땅으로 이동하며 현지 토착 세력과의 관계 형성에 공을 들였고, 이는 곧 졸본 지역에서 기반을 잡는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3. 왜 하필 험준한 '졸본'이었을까? 주몽이 정착한 졸본 지역은 사방이 ...